이 책은 다른 책을 읽다가 언급되는 경우가 많아서 항상 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주식하는 마음, 홍진채 저; 내러티브 앤 넘버스, 어스워스 다모다란 저 등). 저자 대니얼 카너먼은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로, 2002년 행동 경제학에 대한 기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사람들의 행동 (혹은 생각) 이면에 어떤 기제가 숨겨져 있는지를 다룬다. 원서의 제목은 'Thinking, Fast and Slow'인데, 사람들의 사고 체계가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뉘어져 있다고 설명하며 각각이 Thinking Fast 와 Thinking Slow를 지칭한다.
책에서는 먼저 시스템 1과 2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스템 1은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며, 노력이 거의 또는 전혀 필요치 않고, 자발적 통제를 모른다."
"시스템 2는 복잡한 계산을 비롯해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주목한다. 흔히 주관적 행위, 선택, 집중과 관련해 활동한다."
즉, 시스템 1은 직관적인 사고방식이며, 상대방의 목소리에서 적대감을 감지하거나, 단순한 계산, 혹은 특정 분야의 달인이 그 분야에서 판단을 내리는 등의 행동이다. 그에 반해 시스템 2는 논리적 사고방식이며, 비좁은 곳에서 주차를 하거나, 복잡한 계산, 논리적 주장의 타당성을 점검하는 등의 행동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시스템 2에 의해 근거해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 게으름은 깊이 뿌리내린 습관이고, 많은 경우 시스템 1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 시스템 1과 연관된 것들이 좋은 기분, 직관, 창조성, 잘 속는 성향이고, 시스템 2와 관련된 것은 슬픔, 경계심, 의심, 분석적 접근, 노력이다.
시스템 1에 기반하여 사고를 하다가 사람들이 실수를 하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어림짐작과 편향', '과신', '선택'에 대한 예를 든다. '어림짐작과 편향'의 예에서도 다양한 실수를 예로 드는데 '인과관계는 통계를 이긴다' 챕터에서는 사람들이 숫자로 표현되는 통계보다 인과관계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 예시를 아래와 같은 택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밤에 택시 한 대가 뺑소니 사고에 연루되었다. 이 도시에는 '그린'과 '블루', 두 택시 회사가 운영 중이다. 관련 자료는 아래와 같다.
- 이 도시의 택시 중 85퍼센트는 그린, 15퍼센트는 블루 소속이다.
- 목격자는 사고 택시가 블루라고 했다. 법정은 사고 당일 밤과 똑같은 상황에서 목격자의 신빙성을 점검했고, 그 결과 목격자가 두 회사 택시를 제대로 알아본 경우가 80퍼센트, 잘못 알아본 경우가 20퍼센트였다.
사고에 연루된 택시가 그린이 아니라 블루일 확률은 얼마일까?
이 경우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조건부 확률을 고려하여 계산을 하면 41%가 나온다. 실제로 블루였을 때 블루로 본 경우 (12%) 와 그린이었을 때 블루로 본 경우 (17%)를 더한 값 (12%+17% = 29%)을 블루였을 때 블루로 본 경우로 나눠주면 된다 (12/29 = 41%). 실제로 조건부 확률이라 복잡한 계산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대답을 80%로 한다고 한다. 제대로 알아볼 확률이 80%이니 높은 확률로 맟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 정답인 41%와는 큰 차이가 있다.
다시, 위 조건 중 '이 도시의 택시 중 85퍼센트는 그린, 15퍼센트는 블루 소속이다.'를
- 두 회사가 운행하는 택시 수는 같지만, 그린 택시는 사고의 85퍼센트에 연루되었다.
로 바꿔서 생각해보자. 이 때, 사람들이 말하는 블루 택시가 사고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80%에서 거의 절반으로 확률이 줄었다고 한다. 사람들 머리 속엔 그린 택시가 미치광이 집단으로 여겨지게 되고, 목격자가 블루 택시를 잘 못 봤을 확률이 그만큼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위 문장은 그린 택시가 사고의 85퍼센트를 차지한다는 내용이므로 기존 문장과 수학적으로 동일한 내용이다. 이렇게 사람의 직관이 통계적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과신'의 예에서는 스스로의 논리에 지나친 자신감을 갖는 전문가들의 예를 든다. 이들은 본인들의 논리 속에서 인지적 편안함과 논리적 일관성을 기반으로 스스로의 얘기에 반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확신있는 태도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식 전문가, 경영자 등 많은 경우 실제 전문가들의 직관은 틀리는 경우가 많고, 직관보다는 정량적 지표에 의해서 판단을 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직관적 판단을 믿는 것이 타당한 경우는
- 주변 환경이 대단히 규칙적이어서 예측이 가능할 때
- 오랜 연습으로 그 규칙성을 익힐 수 있을 때
라고 저자는 말한다.
'선택'에서는 정말 재밌는 예들이 많이 나온다. 적어두고 싶은게 많지만 한가지만 아래에서 적으면
결정 1: 다음 중 하나를 고르시오.
A. 240달러 무조건 받기
B. 1,000달러를 받을 확률 25퍼센트, 한 푼도 못 받을 확률 75퍼센트
결정 2: 다음 중 하나를 고르시오.
C. 750달러 무조건 잃기
D. 1,000달러를 잃을 확률 75퍼센트, 한 푼도 잃지 않을 확률 25퍼센트
위와 같이 두 가지 결정을 동시에 맞닥뜨렸다고 상상을 하는 경우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은 A와 D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비록 B의 기대값이 A보다 높긴 하지만 불확실한 이익을 회피하며 확실한 이익을 선호하기 마련이며, C를 통해 기대되는 확실한 손실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실제 실험에서도 73퍼센트가 A와 D를, 3퍼센트만이 B와 C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을 합쳐보면 어떨까.
AD. 240달러를 받을 확률 25퍼센트. 760달러를 잃을 확률 75퍼센트
BC. 250달러를 받을 확률 25퍼센트. 750달러를 잃을 확률 75퍼센트
이를 보면 BC가 AD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시스템 1을 통해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어떤 손실을 일으키는지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이러한 시스템1에 지배받는 인간의 사고가 '비합리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합당한 주장을 거부하는 등의 너무 강한 느낌의 어조라고 지적한다. 다만, 인간은 더 정확한 판단과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정책과 제도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또한, 시스템 2를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만큼 항상 시스템 2를 이용한 사고를 할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책을 읽고 나니 우선 항상 스스로 논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했던 나 스스로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특정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편향된 사고를 하는 사람인 적이 많았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비합리적인 사고 (혹은 시스템 1에 의한 사고) 를 한다고 보이는 사람도 사실 각자가 그렇게 판단을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이 때 틀렸다고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합리적인 방향으로 생각/행동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또한, 특히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생기는 많은 의사 결정에 대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 논리적인 판단 하에 내리는 결정들이 사실은 시스템 1에 의한 사고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고 느꼈다. 이러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의사 결정 자체가 아닌 의사 결정 체계 혹은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를 내가 일하는 회사 내에서도 도입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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